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세계는 완고하게 고정된 실체라기보다, 끊임없이 흔들리고 중첩되는 유동적인 파동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모든 흑과 백이 사실은 무수한 회색 스펙트럼 안에 머물러 있듯,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풍경 역시 원자들이 발산하는 파동이 서로를 간섭하며 빚어내는 거대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그 모습은 견고해 보이지만 파동들이 순간순간 중첩되어 형성된 결과물의 한 단면이자, 눈앞에 있으나 온전히 가닿을 수 없는 아득하고 모호한 경계’면’이다. 나의 작업은 이러한 유동하는 면을 잠시나마 포착해 보려는 시도이다.
이렇듯 붙잡을 수 없이 일렁이는 감각은 투명한 레이어와 기하학적 패턴, 그리고 빛을 겹쳐내는 방식으로 드러난다. 일정한 규칙을 가진 패턴들이 얇은 스크린이나 투명한 면 위에 포개어질 때, 본래의 완고한 경계는 흐려지고 미묘한 무아레(moiré)가 발생한다.
경계가 흐려진 공간에서, 나의 시선은 선명하게 드러나는 주된 대상(主)보다 그것을 둘러싼 환경이나 부수적인 것들(附)을 향한다. 벽, 바닥, 몰딩처럼 배경으로 머무는 건축적 요소들 또는 시선 안에 담기지만 인식하지 못하고 스쳐 지나가는 대상들이 작업의 주요한 소재이자 재료가 된다. 명확한 중심을 요구하는 초점 맺힌 시선이 우리를 공간으로부터 분리해 관람자로 머물게 한다면, 주변적인 지각은 형태를 몸의 경험으로 변형시키며 우리를 세계와 통합한다.
이처럼 늘 존재해 온 배경 자체를 작업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조형적으로 실험하고자 한다. 빛의 중첩이 구석구석 스며들어 중심과 주변의 관계를 뒤흔들 때, 단단했던 물리적 공간은 유연한 상(image)으로 전환된다. 공간 안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작업은 관람자 행위의 바탕이 된다. 관람객이 전시장을 향유하는 과정 속에서 작업을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 온몸으로 감각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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